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문단 편집) === 무능한 야전지휘관 === [[겨울전쟁]], [[바르바로사 작전]]의 실책으로 워낙 큰 대패를 했기 때문에 [[세묜 부됸니]]와 함께 스탈린과의 친분으로 승진하여 '''소련군을 위기에 몰아넣은 원흉'''으로 꼽힌다. 이 점에 대해서는 후배 원수들도 동감하며, 주코프나 바실렙스키도 보로실로프의 일선 지휘는 형편없었다고 낮은 평가를 내렸다. 그래도 부됸니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기병]]에 관해서는 꽤나 큰 기여를 했고, 보로실로프는 적백내전 때 전차부대를 포함한 백군의 대규모 공세를 막아낸 공이 있기 때문에 아무 능력도 없이 자리에 오른건 아니다. 보로실로프 본인도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긴 했다. 그리고 [[대숙청]]을 비난했던 일화처럼 스탈린을 진정시키고 그에게 일갈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보로실로프가 크게 활약한 [[러시아 내전]]은 기본적으로 세계대전과 같은 [[총력전]]과는 거리가 번 전쟁이었으며, 여기서 군공을 쌓은 것은 그가 아무 무능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보로실로프는 혁명가-정치인 출신으로서 현대적인 군사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군사적 무학자임을 감안하면 2차대전에서의 참혹한 결과는 예상되었던 바이다. 즉, 이는 보로실로프 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이런 사람에게 100만대군을 두번이나 맡긴 스탈린의 문제이기도 했다. 적백내전 이후 야전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은 없었지만 개인 화기 사격 솜씨는 무척 뛰어났다고 한다. 어느 날, 소련군 장성들이 보로실로프 앞에서 [[나강 M1895]] 사격 시범을 보이고 있었는데 한 장군이 한 발도 맞추지 못하자 총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보로실로프는 장성에게 권총을 받아들더니 그 자리에서 모든 탄환을 명중시키고는 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총이 아니라 '''동지의 사격 실력이오.'''"라고 말했다. 이후 소련군 전군에 한동안 '보로실로프처럼 쏴라' 라는 운동 아닌 운동이 벌어져서 소련군의 개인 화기 숙련도가 약간 늘었다고 한다.[* 사실 여부가 의심되는 일화인데 공산주의 국가에는 이런 식의 억지춘향 캠페인이 매우 흔하다. 당장 북한만 봐도 [[김일성]]이 무슨 훈시, 지도를 했다 혹은 [[김정은]]이 어릴 적부터 권총 사격에 능했다는 식의 프로파간다는 지금도 널렸다. 다만 당시 공산당원들은 스탈린처럼 은행강도, 테러 활동 등을 거쳐 전투력이 높은 자들이 꽤 있었기에 보로실로프도 그런 과정에서 사격 실력이 숙달되어 정말로 뛰어났을 수는 있다.]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권총을 빼들고 독일군 전차를 막으라는 지휘를 한 것을 보면 용맹스럽긴 하다만 최고지휘관이 할 짓은 아니다. 이런 것을 보면 혁명 이전 자금책으로 임명되어 은행 강도와 열차 강도, 각종 [[적색테러]]로 잔뼈가 굵은 [[스탈린]]처럼 내전기에 다져진 개인 전투력과 소부대 전술 지휘 능력은 높았을 것이다. 이렇게 [[소대장]]-[[중대장]] 혹은 [[특수부대]]의 최소 단위 제대 팀장에나 어울릴 인물이 [[집단군사령관]]급 위치에 임명되었으니 문제였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대규모 정규전을 상정한 [[냉전]] 시절 [[미국]]에서는 특수부대를 오래 거친 장교들은 일반 부대 출신보다 지휘 계통에서 요직으로 빠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전쟁양상이 달라진 [[테러와의 전쟁]] 이후에나 간간히 나오는 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